하버드 대학교의 ‘행동 통찰과 공공 정책(Gov 1759)’ 과목 기말고사 문제지에는 눈에 띄지 않는 하얀색 글씨로 이런 지시문이 숨겨져 있었다. 학생이 문제를 챗봇에 복사해 넣으면 AI가 스스로 꼬리를 밟히도록 설계한 교수진의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이 함정은 학생 익명 커뮤니티인 사이드챗(Sidechat)에 “애쓰셨네요”라는 조롱 섞인 코멘트와 함께 올라오며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이 촌극은 단순히 ‘학생의 부정행위와 교수의 적발’이라는 쫓고 쫓기는 게임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챗GPT 등장 3년, 하버드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이 숨바꼭질은 AI가 ‘교육’이라는 행위 자체를 어떻게 해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징후다.
평가의 위기를 넘어 ‘학습 과정’의 위기로
교육 현장에서 AI를 원천 차단하거나 완벽히 가려내겠다는 시도는 이미 한계를 맞이했다. 교수들의 진짜 우려는 적발 소프트웨어의 한계나 명예위원회 회부의 번거로움이 아니다. 그들의 시선은 훨씬 더 근본적인 곳, 즉 ‘AI가 학생들의 사고방식과 학습 능력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가’로 옮겨갔다.
현재 하버드 학부 교육처는 AI 활용 지침을 개별 교수의 교육학적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이는 과목의 특성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교수들의 치열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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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88 (사회 소설 속 유머의 힘): 사고를 전개하는 글쓰기 훈련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단계에서 AI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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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화학 및 생물학: 평가 항목에서는 AI를 배제하지만, 개념을 이해하고 연습 문제를 푸는 보조 교사로서 구글 제미나이(Gemini) 활용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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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98RM (정보화 시대의 민주주의 재고): 기계적인 결과물이 제출될 경우 무조건 재작성을 요구하며,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을 강제한다.
이러한 정책의 파편화는 교육자들이 ‘결과물’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학습 과정’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모색하는 과도기적 진통이다. 학생들 역시 과제에 AI를 숨 쉬듯 사용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내면에는 아무런 배움이 쌓이지 않고 있다는 기묘한 죄책감과 상실감을 토로하고 있다.
부싯돌의 교육학: ‘모름’의 시간을 견디는 힘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 관한 플라톤의 통찰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일곱 번째 편지』에서 가장 깊고 중요한 배움은 요약본을 읽거나 완성된 정답을 전달받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타인과의 토론, 끈질긴 사유와 경험이 부싯돌처럼 맞부딪히며 내면에서 ‘이해의 불꽃’이 일어나는 기나긴 물리적 시간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교황 레오 14세의 AI 관련 문헌인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 역시 교육을 논하며 이 부싯돌의 비유를 인용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교실은 플라톤의 이상과 정확히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부싯돌을 쳐내는 고된 인지적 노동 없이, 그저 불꽃만 쥐여주는 완벽한 기계를 학생들에게 쥐여주었다.
AI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기계가 생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학생이 머릿속에서 스스로 질문을 온전히 형성하기도 전에, 즉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유익하고 생산적인 불편함’을 느끼기도 전에 매끄러운 정답을 뱉어낸다는 데 있다. 호기심이라는 지적 생명력은 앎을 향한 결핍과 압박감 속에서 자라난다. 기계가 이 과정을 생략해 줄 때 학생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유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텅 비어버린다.
사유의 외주화, 교육의 목적을 다시 쓰다
모든 기술은 사용자의 내면을 빚어낸다.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학생들을 ‘어떤 학습자’로 길러내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마찰 없이 즉각적인 답을 내놓는 환경은 난관과 지루한 탐구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산한다. 교황의 문헌은 진리를 찾는 수고로움에 대한 “피로, 지루함, 무관심”이야말로 현대 교육이 맞서야 할 가장 위험한 적이라고 경고한다.
기계가 단 몇 초 만에 써 내려간 훌륭한 에세이를 보며, 학생들은 자신이 도서관에서 끙끙댔던 몇 시간이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 현장이 학생들에게 반드시 복원해 주어야 할 서사가 있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던 헛발질들, 논리가 무너져 내린 실패의 경험,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이 훨씬 복잡하다는 뼈아픈 깨달음. 에세이를 완성하기 위해 걸렸던 그 지난한 시간들은 결과물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 시간 자체가 바로 교육이었다.
완벽한 기계는 결코 인간을 대신해 그 부싯돌을 부딪쳐 줄 수 없다. 진정한 배움에는 표면적인 성과 이면의 복잡한 현실과 마주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다가올 시대의 교육은 단순히 AI를 잘 활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언제 기계의 스위치를 끄고, 기꺼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플라톤의 부싯돌을 다시 집어 들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 그것이 무너진 교실을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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